King Jeongjo's Jangyongyoung and its Value in Terms of Security

정조대(正朝代) 장용영(壯勇營)의 경호학적 가치

  • Received : 2011.07.29
  • Accepted : 2011.09.16
  • Published : 2011.09.30

Abstract

Jangyongyoung was a royal guard in the King Jeongjo Period. The guard was established after the inauguration of King Jeongjo to protect the king and strengthen the royal authority. In terms of security study, it has high value in that it gives insights to the development of security system and its achievements and new role of supporting king's cultural events. Jangyongyoung was a formal guard established to achieve king's political reform. After the King Injo restoration, there sprouted many security guards, including Howicheong, Eoyounggun, and Gemgun. Those were all makeshift systems. But Jangyongyoung grew as a standing and futurist system as it went through some different names, Sukwiso, Jangyongwi, and finally Jangyongyoung. It served to protect the legitimacy of King's succession, to strengthen royal authority, and to bring stability to people's lives. Jangyongyoung had an efficient organization and operation. It also had the characteristics of modern security, integration, professionalism and size. In Jangyongyoung, military training and security were not separate. They protected king from dangers and guarded king's bed, and they trained themselves to deal with unforeseen occurrences. By doing so, they could support king's many activities, including visit to royal tombs, touring of Hwaseong Fortress, and watching military training. Jangyongyoung not only served as a military guard but also it had a cultural function. They made it possible that king and people met in the king's procession. Jangyongyoung supported Jeongjo's political reform, and as a royal guard it enhanced the authority of royal family and exemplified a new security guard by supporting king's cultural events where king, servants and people could become one.

상정조대 장용영(壯勇營)은 정조 즉위 후에 신변안전(身邊安全)과 왕권강화(王權强化)를 이룩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 친위부대(親衛部隊)였다. 이는 경호학적 관점에서 볼 때 경호제도 발전과 호위(扈衛) 성과, 경호환경(警護環境)조성의 문화적 가치가 있다. 장용영은 조선 후기의 호위제도의 변화 속에서 정조의 정치적 개혁을 실천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합당한 제도로 거듭났다. 인조반정 이후에 역 쿠데타를 방지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호위청(扈衛廳)과 어영청(御營廳) 발족, 그리고 효종 때의 군사력 증강을 목표로 금군을 발전 시켰던 제도들은 임시변통적인 것이다. 그러나 장용영은 숙위소${\blacktriangleright}$장용위${\blacktriangleright}$장용영의 과정을 거치면서 보다 지속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제도로 거듭나 자신의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지키면서 왕권강화와 민생안정에 대한 정치적 포부를 실현하는 데 실질적으로 뒷받침 할 수 있는 친위부대로 발전하였다. 장용영의 제도에는 효율적인 조직과 운영이 내포되어 있다. 장용영 조직의 특성은 통합성, 전문성, 대규모성을 지닌 것으로서 현대경호의 특성을 드러냈다. 장용영의 군사훈련(軍事訓鍊)과 호위(扈衛)는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호위 작용에서도 정적인 신변보호(身邊保護)와 숙소경비(宿所警備)의 임무에 충실했으며, 이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폭넓은 활동의 범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돌발 사태에도 충분히 대비하였다. 그리하여 잦은 능행과 대규모의 화성행차 및 병사들의 훈련 참관 등의 폭넓고 자유로운 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었다. 장용영은 단순히 군사적 기능만을 발휘한 부대가 아니고 문화적 기능을 발휘하여 왕실과 백성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어 왕의 행차(行次)에 참여하고 왕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왕과 병사가 하나가 된 장용영은 정조의 개혁정책을 뒷받침하는 핵심부대로서의 위용(偉容)을 보여줌으로써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국왕과 신하와 백성들이 하나가 되는 경호문화행사(警護文化行事)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Keyw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