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s Tap-gol Park Construction Process through Design Document Interpretation

설계도서를 중심으로 본 1910년대 탑골공원의 성립과정

  • Published : 2013.06.30

Abstract

This research analyzed the spatial components and establishment of the Tap-gol Park according to the plans between 1897 to 1916 when the discussions on the construction of the park began and it was accomplished as an urban park. The results are as follows. The establishment of Tap-gol Park can be divided by three period. Firstly, Tap-gol Park was owned by the royal family from 1987 to 1904. The discussions on construction of Tap-gol Park as a first urban park of Gyeongseong(京城) in 1897, and the private houses were tear down in order to secure land for the park in 1899. Gates and fences surrounding of Tap-gol Park were organized and it was opened in 1902 based on park plane of turtle - shaped. The octagonal pavilion for 'Lee-Wang-Jik musical band(李王職音樂隊)' was relocated in the southwestern part of the park in 1903. Secondly, Tap-gol Park was used actively by the public between 1910 to 1913, because it was opened for individuals. Also The boundary of Park were changed by surrounding facilities and recreational facilities and benefits was complemented for users. Tap-gol park was opened at nighttime in August 1913. Tap-gol Park was used as a place of amusement park. Thirdly, commercial facilities were made as the park facility between 1914 to 1916. The purpose of 'Kkikdajeom(喫茶店)' was similar to the one of modern cafes. It was built as a typical Japanese tea-house with a small pond having an island and a bridge constructed inside. With the increase of usage of Tap-gol Park as a recreational area by the citizens in 1916, the pavilion as a rest area and toilet as amenities were supplemented. Superintendent's office was equipped too. Simple chairs made from the wooden logs were installed around greenhouse, concert hall, the Wongaksa Buddhist temple(圓覺寺址十層石塔), and the flower garden was fenced round. After the relocation of Yongsan music band to Tap-gol Park, the existing concert hall was demolished. The shape of the park which was seen from the pictures of the magazines of 1920s were achieved as early as 1916. The importance of this research includes the basis to revise the errors of the preexistence researches and value of historical material of the design plan reference of the park which was accomplish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Also this research is to study on the spatial components of the modern landscape architecture and parks.

본 연구는 탑골공원의 조성 논의가 시작된 1897년부터 공원 형태가 완성된 1916년까지 약 20년 동안 작성된 설계도면을 1차 사료로 활용하여 공간 구성요소의 변화를 통한 공원 성격의 형성과정을 분석했다. 이에 도출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1897년에서 1904년까지는 왕실 소유의 공원으로 탑골공원이 조성되는 시기이다. 고종의 근대 국가 건설을 위해서 1897년 조성 논의의 시작과 1899년 민가를 철거하여 거북이 모양의 공원 평면을 바탕으로 담장 남문 북문 조성하여 1902년 개원하였다. 1903년에는 이왕직 음악대의 연주 장소로 팔각정이 도입되었고, 연주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어 1904년 호자식 음악당이 축조되었다. 이 시기는 일요일에만 개방되는 이왕직 소유의 공원이었다. 둘째, 1910년에서 1913년까지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이용이 활발해지는 시기이다. 주변 시설로 인해 경계부가 변형되었으며, 이용자를 배려한 휴양시설과 편익시설이 보완되었다. 1913년 8월에는 야간 개방이 이루어 졌는데, 이는 1910년대 일제에 의해서 도시풍 오락의 장소로 탑골공원이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1914년에서 1916년까지 상업시설이 도입된 시기이다. 1914년 상업시설로 끽다점인 청목당이 들어섰으며, 주변에 연못과 등나무 그늘시렁이 조성되었다. 1916년 종로 야시의 시작으로 탑골공원 이용은 더욱 활발해졌으며, 휴양시설과 편익시설의 확충과 관리를 위한 경계울타리와 관리사무소가 설치되었다. 기존의 호자식 음악당이 철거되고 용산군주차사령부에서 가제보형 음악당이 이축되었다. 1916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1922년 개벽 에 등장하는 탑골공원의 이용 행태와 부합하는 공원형태가 완성되었다.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공원 설계도면의 발굴이라는 사료적 가치, 기존 연구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근거 제시, 근대 조경공간에 사용된 공간 구성요소와 재료에 대한 탐구로써 의의를 지닌다.

Key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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